홍콩은 영국령 시절 일찍이 번성을 맞이한 도시답게 1960~1970년대부터 고층빌딩과 대단지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갔고 이들은 여전히 홍콩의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홍콩의 도심인 침사추이(尖沙咀) 한복판에 있는 충킹맨션(重慶大廈). 왕가위(王家衛)가 감독을 맡고 임청하(林青霞), 양조위(梁朝偉), 금성무(金城武), 왕비(王菲)가 출연한 중경삼림(重慶森林)의 무대인 17층 주상복합건물로 1961년에 지어졌다.

인근의 미라도맨션(美麗都大廈)은 한발 앞서 그보다 2년 전인 1959년에 건축됐다.

이러한 건물들은 이처럼 지어진 지 오래됐어도 그 위치가 어마어마한 유동 인구의 홍콩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인 침사추이 노른자 땅 위에 있으니 그 부동산값 또한 엄청 비싸다.

홍콩은 전 세계적으로 집값이 살벌한 곳으로 유명한데 서울 1.8배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땅 중  3.7% 정도 만이 주택임대로 공급됐고, 홍콩을 세계 금융허브가 되게 만들어 준 낮은 세율을 대신해 정부 재정확보의 수단으로 비싼 값에 경매를 통해 토지를 임대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지역이 된 것이다.

홍콩의 오래된 아파트들을 보면 세월의 흐름 속에 외벽이 얼룩지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언뜻 흉물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건물들이 자아내는 독특한 감성으로 관광객들을 매료시킨다.

우선 처음으로 소개할 곳은 홍콩섬 쿼리베이(鰂魚涌|Quarry Bay)에 위치한 익청빌딩(益昌大廈)이다. 196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와 유명해졌다.

영어로는 괴물빌딩(Monster Building)이란 애칭으로 불리는데 특유의 ㄷ자 구조와 엄청난 용적률에서 비롯된, 빼곡하게 붙어있는 창문과 알록달록하지만, 벗겨진 페인트칠의 오래된 건물을 보면 제법 납득이 가는 별명이다.

또 다른 아파트는 구룡반도에 자리한 초이홍아파트(彩虹邨)로 무지개를 뜻하는 彩虹(채홍)이라는 한자가 들어간 만큼 아파트도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색깔로 칠해져 있다.

초이홍아파트 역시 1960년대에 지어진 대규모의 공공주택단지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방문해서 배드민턴을 친 곳으로 유명하다.

이 아파트의 특징은 단지 가운데에 있는 주차장 건물의 계단을 타고 옥상에 올라가면 포토스팟으로 알려진 아파트와 마찬가지의 알록달록한 농구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보는 아파트의 모습은 예쁘기 그지없다.

아쉽게도 이런 예쁜 초이홍아파트의 풍경을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것도 내년까지다. 2026년부터 재개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홍콩의 익청빌딩이나 초이홍아파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광지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고 생활이 깃든 장소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풍경이 둘러볼 가치가 있는 장소라는 점을 곱씹어 보면 흥미롭다.

우리 지역의 경암동 철길마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철길마을은 완전한 관광지화로 이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전의 철길마을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고 근자에 이르러 낯선 다른 이들에게는 명소이다.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할 수 있는 것들이 남들에게는 낯선 것이고, 반대로 남들에게 익숙한 것이 우리에게 낯선 것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것들이 비로소 사람들을 찾게 한다는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