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뉴스

한국의 근⸳현대 역사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친일의 문제만큼 큰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화제는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친일의 문제는 지우고 싶은 우리들의 과거 상처의 문제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계속, 역사의 질곡에서 우리들은 어떤 실존의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소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 작가를 친일문인으로 규정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무게를 지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 작가를 친일문인으로 규정할 경우 당사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이나 후손들에게까지 치명적인 멍에나 굴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작가를 친일문인으로 규정하는 작업의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문제가 되는 시기만을 가지고서 판정할 것이 아니라 그 작가의 전체 생애나 전체 문학 지형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친일의 배경이나 시기, 동기나 강도, 이후 참회나 반성의 유무 등 친일을 둘러싼 변수나 정황 등을 종합적⸳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간행한 '친일인명사전'의 친일문인 편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발간 작업 당시 친일파의 역사적 청산과 심판에 대한 여론이나 기운이 거센 기세로 확산되는 한편 민족정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엄정한 역사논리가 주도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친일 문인 선정 작업의 경우 친일의 배경이나 시기, 동기나 강도, 이후 참회나 반성의 유무 등 친일을 둘러싼 변수나 정황 등을 종합적⸳총체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에서 아쉬운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엄정한 역사논리를 바탕으로 오랜 각고의 노력 끝에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작업의 역사적 의의나 가치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색할 필요가 없어야 할 것이다.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 점에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그 작업의 역사적 의의나 가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딴죽을 걸거나 끙짜를 놓을 생각 또한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로 일제 말기 신체제기의 글들을 대상으로 해서 친일문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채만식의 경우는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앞서 말한바 여러 가지 다양한 변수나 정황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나 존중의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채만식의 친일은 지역사회에서 그의 문학적 성취를 기억하거나 문학 유산을 보존⸳관리하는 작업에 결정적인 빌미나 언턱거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재고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그러한 판단은 무엇보다 채만식을 친일문인으로 규정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었던 문학단체인 (민족문학) 작가회의의 이사장을 역임했던 최원식과 염무웅의 주장을 보더라도 터무니없는 억측이나 견강부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친일문인 42인의 명단은 재검토에 붙이는 것이 좋겠다. 친일에 나선 행위나 글의 수량보다는 신념 여부 또는 그 질이 친일문인 판정에 더욱 중요한 것인데, 명단 가운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채만식은 대표적일 것이다. 그는 분명 일제 말 친일행각에 글과 강연으로 가담했다.....우리는 그가 ‘신체제’와 대결하는 내적 고투에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에 온몸으로 투항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해방 직후 유일하게 자신의 친일을 고백함으로써 친일문제를 공론에 붙였다.(최원식, ｢친일문제에 접근하는 다른 길｣, '창작과 비평', 2006년 겨울, 373-374면.)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이목을 끄는 것은 그가 일제 말 친일문인의 대열에 끼게 된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그의 문학적 지향과도 거리가 멀고 그의 개인적인 성향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친일이든 그와 반대되는 것이든 그는 일체의 집단적인 행동을 기피하고 불신해 왔던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행각은 그의 체질에도 맞지 않았을뿐더러 그의 예민한 신경으로 견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염무웅, ｢식민지 민족현실과의 대결｣,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214-216면.)

채만식을 친일문인으로 규정하거나 재단하는 것에 재고를 피력하는 두 사람의 의견은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이 두 평론가 모두 친일문학의 공론화 작업에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던 데다가 활발한 현장 비평과 연구 활동을 통해 민족문학의 담론장에서 적지 않은 이론적인 지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