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종구 교수
‘산장의 여인’이라는 가요가 있다. 1957년 권혜경이라는 가수가 불러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노래이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가사도 그렇지만 멜로디 또한 애잔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쓸쓸한 소회와 비애를 자아내게 한다.
게다가 평생 병마와 씨름하며 독신으로 살다 생을 마감한 권혜경의 비운의 삶과 오버랩되면서 이 노래로 인한 비감은 더욱 증폭⸳고조된다. (권혜경 이후 조용필을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단연, 압권은 권혜경이다. 노래 하나에도 그것을 만들거나 부른 사람의 신산과 고난의 인생 여정과 서사가 투영될 때라야 절실한 울림을 자극⸳촉발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 노래를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이 노래를 왜 소환하는가? ‘채만식의 문학비’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채만식의 문학비를 생각하면 이 노래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군산대학교와의 인연으로 군산에 이주한 지 올해로 32년째이다.
그 32년 동안 월명공원 아침 산책은 루틴으로 하고 있다. 도심 근교에 월명공원과 같이 훌륭한 산책과 휴식 공간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군산은 축복받은 도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천혜의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월명공원의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금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언덕에 채만식 문학비가 나타난다.
1984년 처음 세워졌을 때만 하더라도 이 문학비는 꽤나 많은 주목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월명공원 내 '채만식 문학비'
갈수록 지역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채만식의 처지를 실물로 확인하는 것 같아서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 착잡한 심정에서 촉발되어 떠오른, 문학비의 이전을 제안하고자 하는 바이다.
현재 위치의 채만식 문학비는 건립 당시 금강 하구의 탁류가 내려다보이는 장소로서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문학 기행이나 답사를 오게 될 외지의 방문객들이 찾아가기에는 접근성 또한 높지 않은 편이다. 하여 그 첫 번째 대안으로 채만식 생가 터를 제안하고자 한다.
그럴 경우 채만식 생각 터는 조금 더 주목을 받으면서 활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두 번째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장소는 채만식문학관이다.
채만식은 일제 강점기 문학 지형에서 돌올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1급 메이저 작가이다.
비록 그가 일제 말기 신체제기에 결코 원치 않았던 대일 협력의 글들을 발표하고 그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친일문인으로 등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1급 메이저 작가로서의 채만식의 위상이나 비중은 결코 무화되거나 무시할 수 없다.
그 정도로 일게 강점기의 민족 문학 지형에 그가 남긴 족적이나 성취는 뚜렷하고도 풍성하다.
군산 출신의 문인들 가운데 채만식의 이러한 작가적 위상을 넘어설 작가나 시인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한편 채만식은 위선이나 허영에 대해서는 생래적인 거부감을 가질 정도로 정직하면서도 결곡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그러한 그는 일제 강점기라는 액색한 시운을 만나 50여 평생을 신산과 고난으로 점철·얼룩진 고단한 삶을 살다가 비운의 삶을 마감한다.
문학비의 고적한 처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사후에서까지 이렇게 고적하게 지내게 해서는 채만식을 낳은 지역사회의 도리나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 정도의 위상과 비중을 지닌 군산 출신의 작가를 지금처럼 홀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 그리고 지역사회 후배 문인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바이다.
이 글이 지상에 실릴 때면 이미 가을일 것이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고적한 문학비 주변에 ‘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소복하게 쌓이거나 ‘풀벌레만 애처로이 밤새워 울고 있어’ 가뜩이나 쓸쓸한 소회와 정취를 돋우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면서 이 글을 매조지고자 한다.
홈 > 교육/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