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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군산, 공원의 도시를 향하여 - (24)

  2024-04-1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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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정현 아리울역사문화 대표




                       채만식문학비 앞에서...


공원은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곳이다.

공원 안에는 사유 할 수 있는 공간과 사물들이 그 어느 장소보다 많다. 특히 월명공원에는 다양한 비(碑)들이 있다. 그 비(碑)들은 압축 파일처럼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조각공원에서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채만식 문학비와 만나게 된다.

‘월명공원 안에 왜 채만식 문학비가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쩜 문학비가 월명공원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문학비는 수시탑 근처에 있다. 수시탑이 있는 곳은 해망정이 있던 곳이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곳 옆에 있는 채만식문학비는 바다를 바라보기 알맞은 장소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 물뿌랭이 마을에 있는 뜬봉샘에서 출발한 금강 물은 1000리를 흘러 금강하구언으로 빠져나간다.

'이러케 에들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여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채 얼러 좌르르 소다져 바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하나가 올라안젓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 얘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그러나 항구래서 하룻밤 매즌정이 떼치고 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는 배꽁문이에, 물결 만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부러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퍼도 달코롬한 이얘기는 못된다.'  (탁류,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위 문장은 백릉 채만식이 1937년 10월 12일부터 1938년 5월 17일까지 198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한 내용의 앞부분을 그대로 적어놓은 것이다.


월명공원에서 금강과 서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자리한 '채만식문학비'

군산 사투리가 섞여 있고 맞춤법도 다르지만, 정감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놓았다.

소설가 채만식은 하루에 두 번씩 일어나는 밀썰물 현상으로 갯벌이 휘돌아 탁류가 되어버린 강물을 보았다.

탁해진 물을 보며 일제강점기의 세태와의 공통점을 찾았다. 그 시대와 그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풍자와 해학으로 소설 속에 담아놓았다.

비문에는 그의 일대기가 자세하게 적혀 있다.

‘1902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난 소설가 채만식 선생은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중퇴했다. 1925년 단편 ''새 길로''가 조선 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대표작은 장편소설 ''탁류''로서, 부조리에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자 군산을 무대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억눌린 서민들의 삶을 기록한 수작이다. 채만식은 한국전쟁 직전 고향 근처에서 가난과 폐결핵이라는 병고로 마흔여덟의 짧은 나이에 이승과 인연을 끊었다. - 중략- 이제 유서 깊은 이 고장 도도히 흐르는 바다를 굽어보는 자리에 정성을 모아 여기 한 돌을 세워 그 업적을 길이 추모하게 되었으니 기쁜 마음 그지없다.’

산책하다가 잠시 문학비 앞에 멈추어 보자.

채만식 작가의 치열한 삶과 소설의 배경이 군산이었음을 알자. 금강하구에 다다른 강물은 여전히 탁류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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