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으로 감싸인 옥구읍 상평리

옥구(沃溝)는 이름에서처럼 고랑진 넓은 들판이 물도 풍족하고 기름진 곳이다.

마한시기에는 군산지역에 있는 세 개의 소국 중에 하나인 마서량국이었다. 백제 때는 마서량현이었다가 통일신라 때 왕권이 약해진 경덕왕이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전국의 지명을 한자인 두 글자로 바꿀 때 옥구(沃溝)가 되었다. 

 조선초까지 옥구현이었다가 조선말에는 옥구군이라 칭하면서 1914년에 이르러서 임피까지도 옥구군에 포함시켰다가 1995년 군산시에 통합되었다.

옥구읍 내 상평리는 광월, 읍내, 신덕마을로 이루어졌다.

옥구읍은 석성으로 추정되는 읍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읍성은 평산성으로 광월산 위에서 두 날개를 펼친듯 동네로 이어져 내리며 마을을 감싸고 돈다. 

고지도에 나타난 읍지도처럼 U자를 이루며 마을을 감싸는 광월산이 그대로 있어 전통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은 아늑함이 느껴져 고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읍성의 문은 남문과 서문, 동문으로 이루어졌다. 서문은 암문으로 광월산 성벽을 따라 내려오다 성 밖에서 보면 통로가 없는 것 같은데 좁은 통로를 지나면 갑자기 평평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와 신기하기까지 하다.

남문은 옥구선 철도가 지나가면서 폐쇄되었다. 남문 자리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마을 중심에는 2008년 폐교된 상평초등학교가 있다.

상평초등학교는 동헌과 내아가 있던 자리에 있다. 

그 해 당북초등학교도 폐교의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알록달록한 색칠이 되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곳은 폐교가 되고 한 곳은 생기가 도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동네 어른의 이야기로는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려는 엄마들의 욕구가 학교를 문 닫게 했다고 한다. 즉 학생 수가 없으니 학교의 존재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폐교가 된다는 것은 학교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의 추억을 쓸쓸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헌이 사라진 것 못지않게 말이다.

동헌은 고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관청이며, 내아는 수령이 생활했던 곳으로 읍성의 핵심이 되는 시설이었다. 일제는 우리 정신이 깃든 전통을 없애기 위해 전국에 있는 동헌을 허물고 그곳에 주로 초등학교를 지었다. 초

등학교 뒷곁에서 동헌과 내아 건물의 기단석이 확인되었고 조선시대 기와와 백자 조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정문에는 읍성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 오른쪽으로 마을을 돌아 걷다보면 커다란 당산나무 두 그루가 하늘을 향해 가지를 시원스레 뻗고 있는 동문 근처에 이른다. 팽나무인 노거수는 오랜 세월 문지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음을 알 수 있다.

좁은 길로 이어지는 동문 밖 옥구농공단지는 성내와는 사뭇 다른 세상이다.

옥구향교는 크게 보면 네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세종대왕 숭모비와 오현사 그리고 단군성전, 대성전과 명륜당을 포함한 향교 공간, 최치원에 관련된 문창서원과 자천대 그리고 옥산서원이다.

옥구향교는 태종 3년(1403)에 당시 교동이라 불렸던 옥구현 이곡리에 처음 세워졌다가 성종 15년에 광월산 북쪽으로 옮겨지고 다시 인조 24년에 현재 자리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교로 들어가기 위해 자그마한 하마비와 홍살문을 지나야 한다. 홍살문 오른쪽에는 송덕비가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다. 동헌 앞에 있었던 송덕비를 옮기면서 시멘트로 고정시켜서 비석의 키가 짧아졌다. 숫자로 보면 임피향교 앞 연지 근처에 있는 송덕비보다 훨씬 많다.

보이는 것들은 생각을 일으킨다. 잘 보면 그것에서 정말 보아야 할 것들이 보인다. 우리는 어릴 적 비석치기 놀이를 했다. 비석치기는 송덕비에서 유래되었단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사또들이 다른 곳으로 이관을 하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비석을 세우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피 같은 돈으로 나쁜 원님의 비석을 세웠다면 보기만 해도 울화가 치밀 것이다.

밤에 몰래 와서 돌을 던졌고 거기서 비석치기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옥구향교에 세워진 비석들 중에도 분명 돌 맞은 비석이 있었을 것이다.  

송덕비 맞은편에는 새로 만들어진 주차장이 있다. 그곳은 객사가 있던 곳이다. 

객사는 중요한 내빈 및 사신이 방문했을 때 묵었던 숙소이자 왕의 전패(殿牌;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던 곳이다.

조선시대 읍성의 가장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 읍성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대형 기단석과 조선 시대 유물 조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주차장이 되어버린 곳에서 객사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임금님의 명령을 대신하는 사신을 맞이하는 객사가 있었던 곳일 정도로 옥구의 위상이 컸던 것만은 사실이다.

외삼문을 통과하면 바로 명륜당이 나온다. 원래 향교의 구조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앞에 오고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뒤에 있는 전묘후학의 형태인데 뒤에 산이 있을 경우에는 산사태 등의 위험성 때문에 학생들의 생명을 우선으로 하는 전학후묘 형태를 취한다.

옥구향교도 뒤에 광월산이 있어서 명륜당이 앞에 있다. 명륜당 옆으로는 전사재와 양사재가 있다. 

대성전 담장 너머의 커다란 은행나무는 시선을 높은 하늘로 이끈다. 향교마다 은행나무를 심는 것은 여러 가지 설에 의해서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단다. 또한 은행나무는 해충이 끼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열매를 맺는데 배움의 길에 잡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배움을 통해 열매 맺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향교 경내에는 배롱나무도 있다.

배롱나무는 껍질이 없다. 배움이란 자기가 안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껍질을 벗긴 속을 보이듯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며 배움의 길에 서라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네 선조들은 보이는 자연물까지도 의미 부여를 하며 배움의 도구로 삼아왔다. 

양사재 옆으로 난 좁은 문을 통과하면 자천대가 있다. 자천대는 원래 선연리 하제 바닷가에 있었다. 일본이 비행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옥구향교 경내로 옮겨진 뒤에 1967년에 중건되었다.

문창서원은 최치원을 기리는 서원이다. 자천대와 마주보는 곳에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문창이란 문장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고려 초 현종이 최치원에게 내린 시호이다.

옥구향교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단군성전이 있다. 1979년 단군성묘를 만들고 개천절에 매년 대제를 봉향하고 매월 그믐에도 제향한다.

세종대왕 숭모비도 있다. 비석 뒤편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단아하게 새겨져 있어 참신하다. 왜 전국 어디에도 없는 단군성묘와 세종대왕 숭모비가 향교 안에 있고 다양한 공간들이 함께 하는 것일까?

추측컨대 군산의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군산은 바다와 인접해 있고 두 강 사이 반도형으로 펼쳐진 들판이 있다.

이로 인해 평화 시에는 문물교류의 나들목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전쟁 시에는 요충지가 되었다.
문물의 유입으로부터 오는 다양성,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주체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선조들의 화합과 소통 그리고 민족애의 산물인 것이다. 

은행나무가 어린 새잎을 내는 봄이 오면 옥구향교 경내와 읍성 한 바퀴를 다시 걸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