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민족적 전망의 모색과 관련된 채만식의 의도는 일본인 거주 공간과 조선인 거주 공간에 대한 진술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이 연재되던 1930년대 후반의 군산은 “계획적으로 개발된 근대적 일본인 거주지와 무질서한 조선인의 거주지가 명확한 경계를 이루면서 공존”(전남일 외 지음, ‘한국 주거의 사회사’, 돌베개, 2008, 91면)하는, “민족을 축으로 한 공간적인 위계나 차이가 명확하게 구획된 전형적인 식민지 이중도시의 특징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도로나 상⸱하수도 시설 등과 같은 도시 인프라나 생활 환경이 좋은 영화동, 신흥동, 월명동과 같은 북서부 지역의 평지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했고, 둔율동(둔배미), 흥남동(흙구뎅이), 개복동, 창성동, 죽성동, 해망동과 같이 도시 인프라나 생활 환경이 열악한 동남부의 도심 외곽 지역에는 조선인들이 거주했다.”(공종구, ｢채만식의 ‘탁류’에 나타난 군산의 지정학｣, '채만식의 민족문학', 역락, 2024, 135면)

당시 조선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공간과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공간은 1930년 후반의 군산이라는 동일한 차원의 시⸳공간에서 공존하는 지역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그 이질적인 차이가 어느 정도로 심한가는 “이런 데(일본인 거주 지역)다가 빗대면 개복동이나 둔뱀이니 하는 곳은 한 세기나 뒤떨어져 보인다. 한 세기라니, 인제 한 세기가 지난 뒤라도 이 사람들이 제법 고만큼이나 문화다운 살림을 하게 되리라 싶질 않다”(‘탁류’, 42-43면)는 판단을 할 정도였다.

한 세기가 지나서도 그 간격이나 격차를 극복하거나 해소하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할 정도로 극심한 두 지역의 공간적인 차이를 묘사하는 채만식의 진술은 심상하게 넘길 일은 아니다.

채만식의 그러한 진술은, 강제 병합과 폭력적인 식민 지배가 조선을 위한 것이었다는 일제의 여론 조작이나 선전이 사실과는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완전 허구적인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음을 당대 현장에서의 생생한 실상을 통해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작품을 연재하던 시기(1937.10.12.-1938.5.17.) 및 그 시대적 배경 또한 심상하게 보아 넘길 만한 문제는 아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식민지 조선의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된다.

무모한 전쟁 도발로 인해 일제가 패망하게 되면 이른 시일 내에 식민지 조선의 해방이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러한 희망이나 기대와는 달리 일제는 질풍노도의 파죽지세로 승승장구, 개전 이후 1년 뒤인 1938년에는 중국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무한과 삼진을 함락하게 된다.

이후 식민지 조선의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기존의 민족적 전망의 모색에 대한 실천 의지를 접으면서 하나둘씩 대일 협력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이른바 ‘대량 전향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채만식은 이러한 상황에서 ‘탁류’를 연재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중일전쟁 이후 전방위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한 전시동원 체제의 폭력과 억압으로 인해 민족적인 전망을 모색하는 작업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채만식은 결코 위축되거나 후퇴하는 법이 없이 민족문학의 실천에 맥진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중일전쟁 이후 더욱 엄혹해진 사상 통제와 검열 상황에도 불구하고 채만식은 󰡔탁류󰡕를 통해 식민지 근대의 허구와 위선에 대한 비판과 대결 의지를 실천하고자 했다.

이러한 실천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해서 볼 때 채만식이 등단 이후 시종일관 추구하고 지향하고자 했던 문학은 ‘민족문학’이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40년 이후 천황제 파시즘과 군국주의 체제의 폭력적인 광기가 식민지 조선의 모든 영역을 지배했던 신체제기에 발표한 대일 협력의 글들을 발표하는 역사적인 과오를 범하긴 했지만, 채만식을 친일작가로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단죄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