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02일 (일요일)

 

 

 
이 름   정영욱 기자
제 목   군산상고 제37회 동창회
URL   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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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사랑이 모교 사랑으로 승화

-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주도적인 역할 제37회 졸업생

- 체육대회? 졸업30주년 행사… 후배 장학금 전달 앞장

‘이 땅 삼천리에 거룩한 뜻이/ 월명산 수풀 속에 무르녹는 곳/

… 중략 … 장 하 도 다 우리 학원 군 산 상 고~’

군산상고 야구부는 1970~80년대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수많은 역전승을 통해 ‘역전의 명수’ 라는 별칭과 함께 야구명문고교로 우뚝 섰다. 이를 계기로 지금의 프로야구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을 정도로 대단했다.

1981년 당시 3학년생으로 역전의 명수로서 두 차례나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던 군산상고 제37회(82년 졸업) 졸업생들.

이들의 단골 얘기메뉴는 1981년 청룡기 대회에서 천안북일고와의 결승전을 꼽는다.

조계현 후배가 이끈 군산상고 야구부가 연장전을 넘어 다음날 재경기까지 하면서 우승을 차지한 경기를 지금도 최고의 명승부로 꼽고 있다.

 이들은 이 결승전 경기를 ‘다윗과 골리앗 싸움’(군산상고가 다윗이었다면 재벌기업 한국화약(지금의 한화그룹모태)의 학교법인(천안북일고)이었다는 점에서 경제력은 물론 사학명문과 큰 차이가 있었다는 의미)이라며 그때의 감격에 빠져 든다.

4강 이상 진출하면 온통 학교 전체가 야구에 대한 관심으로 라디오에 쫑긋할 정도로 귀 기울였고, TV라도 방영되는 날이면 학교 뒷산인 석치산이 떠내려 갈 정도로 함성이 울렸을 정도다. 전국대회 우승이라도 한 날이면 구시청 인근과 학교 등 주요 도로에서 벌어진 카페레이드는 범시민적인 행사로 다름 아니었다.

야간경기가 있는 날이면 주요도로에 인적이 끊길 정도였다. 그야말로 야구도시 군산의 한 풍경이었고 야구명문고로서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이들 동기들의 학교사랑은 야구 사랑으로 고스란히 이어졌고 동우회 등 사회인 야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유만오 37회 졸업생은 군산경찰서 야구팀을 창단하는데 공헌했고, 익산경찰서에서 근무할 때도 야구팀을 창단, 동료들 간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게 했다.

이들 동기생들이 제대로 뭉치게 된 때는 지금부터 20년 전인 30대 초반.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결혼 적령기 즈음에 소규모 계(契)모임이 확대되면서 전체동기모임으로 발전한 것이다.

초대 회장인 이석진(공인회계사), 고흥곤(대원콘크리트 전무이사), 유만오(군산경찰서 근무), 고정열(네바퀴 근무), 정종철, 김부용(세아제강 협력업체 대표: 현 동창회장) 등이 모임을 주도했다. 여기에 홍성주(KB국민은행 나운동지점장), 김영준(전북은행 송천동지점장), 김형준(군산대 체육학과교수), 채배준(신한은행 지점장), 최인규(기업은행 지점장) 등도 가세했다.

야구명문답게 동기생인 김평호(삼성 라이온스코치)와 이건열(동국대 감독) 등도 프로명문구단이었던 해태선수로 맹활약했고 비시즌 때 고향을 찾을 때면 동기들 모임에 힘을 보탰다.

이들은 지금까지 정기 모임일을 21일(37회에서 연유된 3×7= 21)로 잡고 매달 활발한 모임을 갖고 있다. 수도권의 재경모임도 20명씩 만날 정도로 여전히 왕성하다.
 

일반 고교와 마찬가지로 졸업 20주년과 3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렀고 장학금과 야
구부 후원금 전달에서부터 은사초청 등을 통해 동기애와 우정을 다졌다.

 이들은 동문들의 체육회는 물론 지역 졸업고교동기 모임인 5개교 체육대회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와 타고교 졸업동기들이나 같은 학교 선?후배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만 베이붐 세대의 일반적인 현상인 조기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동기들의 모임이 다소 약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어 세월의 흐름에 안타까움만 남았다.

 

 

2023년 癸卯年에 바라는 귀하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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