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시작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 마치고 나니 지나온 삶의 여정들이 모두 디딤돌 같이 여겨집니다. 주어진 삶의 여건에 남다른 힘겨움도 겪었지만 고교 졸업을 앞둔 현재 또 한 계단 더 올라설 수 있게 됐음에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2월 22일 군산평화고등학교 졸업한 만학도 배윤자(59) 씨.
군산시 대야면에서 농사를 짓는 넉넉지 않은 가정의 4남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배 씨는 당시의 시대상이었던 남자들 먼저 가르쳐야한다는 부모의 결정에 배움에서 밀려나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상당수가 그랬듯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의 농사일을 도우며 살았다.
결혼 후에도 배 씨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두 딸 뒤에 얻은 아들(26)의 장이 탯줄과 함께 나오는 바람에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했건만 패혈증 등 합병증으로 1급 중복장애인 판정을 받았고, 성년인 지금도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어 생활하고 있다”고 배 씨는 말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 월급만으로 생활비 충당이 늘 부족했기에 구암초등학교에서 시작된 급식조리사는 바다유치원을 거쳐 지난해부터 발산초등학교 급식실로 이어져 어느 덧 급식조리사 생활 20년을 보냈고 2년 뒤엔 정년을 맞게 된다.
“그동안 어린 아들은 제가 출근하며 상평에 있는 나눔의 집에 데려다주면 군산명화학교 선생님들이 방문해 공부를 가르쳐주는 재택교육을 받았고 이후 명화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한 배 씨는 “다행히 국가 시책의 도움으로 월 200시간 활동보조교사가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아들을 돌봐주어 직장생활이 가능했다”고 밝힌다.
배 씨는 이처럼 고단하고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놓고 싶지 않은 꿈이 늘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바로 배움에 대한 열망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음 드디어 2015년 3월 군산평화중학교 야간반에 입학했다. 낮엔 직장을 다녀야 했기에…. 꿈에도 그리던 중학생이 되었건만 처음엔 누가 저를 알아볼까봐 창피한 생각에 얼굴을 숙이고 주눅 들어 학교를 다녔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배 씨는 하나하나 배워가는 기쁨이 쌓이며 어느새 마음의 평화를 얻어 그 어느 곳보다도 학교를 사랑하게 되었고 2017년 중학교 졸업에 이어 군산평화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배 씨는 현재 임대주택에서 살며 급식도우미 임금만으로 지적 중복장애를 가진 아들을 홀로 어렵사리 돌보고 있다. 남편은 퇴직 후 서울에서 계약직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 씨에게는 노심초사하며 애타는 하루 두 번의 시간대가 있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들을 두고 8시에 출근하면 활동보조교사가 오는 8시 50분경까지의 50여분과 활동보조교사가 돌아가는 오후 8시부터 제가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밤 10시까지의 사이 2시간을 아들 혼자 있어야 했기에 항상 가슴을 졸였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활동보조교사가 전화로 “오늘 아드님 대변 잘 봤어요”라는 한 마디에 하루 피곤함이 싹 가시곤 했다는 배 씨는 학업에 대한 열정을 계속 이어나갈 꿈을 지니고 있다.
배 씨는 “서해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면 아들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한다.
배움을 통해 인고의 삶을 평화와 기쁨으로 바꾼 배윤자 씨의 고등학교 졸업을 군산평화고등학교 이충헌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과 주위의 모든 이들은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다.
한편 배윤자 씨가 다닌 군산평화중고등학교는 2년제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면 학력을 인정해 주는 군산지역 유일의 학력인정학교로 3월 말까지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김석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