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6월 19일 (수요일)

제목 없음

 

 

 
이 름   관리자
제 목   현곡 양일동 선생 35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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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출신의 현곡(玄谷) 양일동(梁一東) 선생의 35주기 추모식이 1일 서울 강북구 수유리 북한산국립공원 내 순국선열 묘역에서 거행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70여명의 추모객이 참여해 현곡이 남긴 발자취를 되새겼다. 주요 참석자는 추모위원장인 김상현 전 국회의원을 비롯해 김현수·김성식·신하철·고홍길 전 국회의원, 박금수 서울 강북구청장, 문태선 서울북부보훈지청장, 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양순대 군옥동우회 운영위원장 등이다.

1912년 12월30일 출생한 현곡 선생은 1930년 광주학생 사건에 연루돼 중동중학교를 퇴교 당하고,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민탁고등학교(北京民鐸高等學校)를 졸업했다. 졸업 후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담했다가 1935년 일제에 붙잡혀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일본 이치타니(市谷)형무소에 수감됐으며, 복역 2년 8개월 만에 신병으로 가석방돼 고국으로 압송됐다.

이후 광복 때까지 향리에서 농촌운동과 농민교육에 종사하다 1945년 8월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가담하며 정치에 입문했고, 제1공화국 자유당 때에는 야당계 무소속으로 반독재운동에 민주당과 행동을 같이했다. 5·16군사정변 후에는 구 신민당의 원내총무와 정무위원 등을 지냈으며, 제3대, 제4대, 제5대 민의원과 제8대,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반독재와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두 번의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활동을 정지당했으며, 1967년에는 ‘정치정화법’과 ‘반공법’ 등의 위반으로 투옥됐으나 병보석됐고, 1973년 동경에서의 이른바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 때에는 참고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980년 4월1일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까지 야당생활로 일관한 현곡 선생에게 1983년 대통령표창이, 1990년에는 애족장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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