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6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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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관리자
제 목   전봉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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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 전봉희




 무속・참위설 피해 국가・국민 정신건강 해친다

 

우리나라 근대사는 무속과 讖緯說(참위설, 풍수)이 조선 500년 역사에 오점을 남기며 일본에 國恥(국치) 빌미를 제공한 사실은 분명하다.

발단은 조선왕조 22대 정조가 승하하고 세자 순조가 11세로 왕위를 계승하니 장인 ‘김조순’에 정사가 좌지우지되며 외척 세도정치가 움튼다.

세도정치의 결정적 시기는 나주 기생 출신 양씨 성을 가진 羅閤(나합, 영의정 김좌근 소실)의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민초들이 도탄에 허우적거리는 단면을 역사학자 梅泉(매천) ‘황현’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왕권이 무참히 짓밟혀진 현실에 와신상담하며 시국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 있으니 왕족 출신 흥선군이다. ‘이하응’은 오직 왕권 회복 운동에 동분서주한다.

비책으로 圖讖緯說(도참위설) 신봉자 최고 지관 정만인을 찾으니 광천면 오서산에 萬代榮華之地(만대영화지지), 덕산면 상가리에 二代皇帝之地(이대황제지지) 양자택일을 권하며 상가리 자리는 2대 왕을 끝으로 국가가 망한다고 재고를 요청한다. 

왕권에 한 맺혀 덕산면 상가리로 결정하니 그 자리는 천년고찰 가야사가 있다. 주지 승에 만량을 주며 閉寺(폐사)하고 부친 ‘남연군’ 묘를 조성한다.

실제로 흥선군 차남이 출생 아명 命福(명복)이며 1863년 12세로 즉위하니 흥선군은 일약 대원군으로 伸冤雪恥(신원설치)하며 섭정을 시작해 조정 2인자로 파란만장한 삶이 전개된다.

유일한 정치 파트너 명성황후도 자기 정치를 하면서 국가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고종이 장성하니 10년 후 ‘최익현’의 상소에 친정체제로 개편 뒤 명성황후는 베갯머리 송사로 실권을 장악하며 대원군이 권력을 잃는다. 절

정은 1882년 6월 10일에 발생한 임오군란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표적이 된 명성황후와 민씨 일가는 충주 장호원에 민응식 집으로 피신한다. 마음 졸이며 피신 중 한 무당이 찾아왔다.

이름은 ‘지창열’(여)로 명성황후에 귀인의 상이라 큰 운이 온다며 안심시킨다. 

청나라 ‘오장경’이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남양에 상륙해 한양에 입성하고 대원군을 천진으로 납치하니 대원군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망국의 시계는 더 빨라진다.

명성황후는가 무녀를 대동하고 환궁하여 진녕군이란 君號(군호)를 내리자 악행을 일삼는다. 

1894년 ‘전봉준’ 장군을 필두로 탐관오리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농민봉기가 일어난다. 조정은 청군에 원병을 청하고 일본군은 부당하게 참여한다. 

최후 1만여명의 동학군은 맨주먹과 죽창으로 현대식 대포의 관군과 합세한 일본군과 싸운 결과 500명만 살아남았다 한다. 

이 농민운동 실패 후 청일전쟁의 씨앗이 되고 을미 1895년 10월 8일 강녕전 앞뜰에서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야쿠자)에 시해된다.

힘이 없어진 고종황제가 강제 폐위되고 일본의 장막에 포위되어 국가 통치에 자력을 잃은 순종 시대를 거처 1910년 8월 9일이 일본에 강제병합 당하며 분개한 마음 감추지 못한다, 

권력, 국민, 국가를 모두 잃으니 蟹網俱失(해망구실,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린) 대원군 마음은 토끼굴을 피하다가 호랑이를 만난 셈이다.    <※기고 내용은 본사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2023-09-15 18:22:51에 등록된 글입니다.[From : 220.82.20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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