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10일 (토요일)

제목 없음

 

 

 
이 름   관리자
제 목   신성귀 만경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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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칼럼 : 신성귀(만경여고 교사)




삶의 과정이 행복인 것을





어느 지인이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글이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행복할 거라 생각 하지만 정상에 오른다고 행복한건 아닙니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런 곳은 없습니다.
같은 곳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고요. 같은 음식을 먹지만 기분이 좋은 사람과 기분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물건, 좋은 음식, 좋은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무엇이든 즐기는 사람에게 행복이 되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겐 불행이 되고 패배합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을 만족해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 갈 곳이 있는 사람, 갖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불확실한 내일에 투자하지 말아요.”

글을 읽고서 하루 종일 마음이 뿌듯함을 간직할 수 있었다.

이글에 사족하면 행복만을 찾아서 다닌다고 결코 행복해 지진 않을 것이다. 어려운 일을 경험해 봐야만 지금 내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혹자는 말한다. 젊었을 때 돈 많이 모아 여행이나 다니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도 자주 보면 지겨운 법이다. 여행만 다닌다고 행복할까?
어쩌다 여행가고자 한다면 계획도 세우면서 가기 전까지의 설렘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디 행복이 거져 주어지는 것이랴. 행복의 씨앗을 심어 놓아야 그 결과물이 주어지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거늘....

행복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불행이 그대의 의지를 시험할 때 그것을 통과한 사람만이 그 열매를 차지하는 것이다. 일을 해야 휴식이 달콤한 것처럼.

소설 <정도령>에서 나오는 우화 하나를 옮겨 본다.

‘어느 장님이 길을 가다가 벼랑에서 굴렀습니다.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오 하느님, 이렇게 위급한 순간에 생명가지를 잡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외쳤습니다. 자꾸 시간은 흐르고 장님은 생각했습니다. 이제 많이 지쳤으므로 잠시 후에는 손에 힘이 빠져서 나뭇가지를 놓치게 되면 나는 다시 벼랑 밑으로 떨어져 깊은 강물에 빠질 것이고 앞도 못 보는 주제에 수영도 할 줄 모르니 영락없이 죽겠구나하고 말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장님은 겁이 나서 “사람 살려!”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마침 길을 가던 노인이 그 모습을 보고는 너무 기가 막혀서 “손을 놔라, 붙들고 있는 것을 놓으면 산다”라고 말했습니다. 장님은 그렇게 말하는 노인이 한없이 미웠습니다. 손을 내밀어 자기를 구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나마 죽을힘을 다해 겨우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를 놓으라고 하니 자기더러 죽으라는 소리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님은 또 다시 “사람 살려!” 하고 계속 비명을 지르다가 급기야 힘이 빠져 손에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 아!”하는 비명과 함께 장님은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죽는 줄만 알았던 장님은 잠시 후에 일어나 옷을 툴툴 털면서 “제기랄, 진작 놓을 것을 괜히 고생만 했잖아! 라며 후회했습니다. 장님은 한자도 못되는 모래사장 위에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잘못된 지식의 편견으로 붙들고 있는 관념의 틀을 깨트려야 할 때입니다.‘

어느덧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이야기이다.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다.

중학생 쯤 보이는 한 학생에게 말을 건넸다.

“얘야 등 좀 밀어줄래? 나도 밀어 줄게”
 “아저씨 날 아세요? 언제 보았다고 반말을 하세요?”
“어 이 녀석이, 허 나 참...”

무심코 어리다고 반말했다가 멋 적은 일이 발생했던 이후에는 깨달은 바가 있어 그 어느 누구를 만나든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언행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와 다투어 본적도 없고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다.

세상에 무시 받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흔히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내용 중에 선배가 후배에게, 젊은 사람이 노인에게 무시한다고 해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게 되는 데 모든 것이 사소한 말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 한마디 온화하게 건네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 조차 학생들의 들려오는 대화를 들으면 욕설이 난무한다. 그냥 못 본척할 수 없어서 “욕을 사용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질 않니? 하고 나무라면 “대화에 욕이 빠지면 아이들이 무시해요”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누굴 탓해야 될까. 시대의 흐름이니 그냥 방관해야만 하는가. 교육자로서 자괴감이 느껴진다.

하늘이 잿빛이다. 곧 눈이라도 내릴 모양이다.

 

 

2018-12-11 09:15:29에 등록된 글입니다.[From : 125.139.14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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