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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칼럼 : 신성귀(만경여고 교사)
마음의 상처에 당당해 지자
5월이 되면 더욱 생각나는 학생이 있다. 오래전 이야기다.
이런 우리 반 아이가 있었다. 처음으로 담임을 맡게 된 설렘에 피곤함도 잊은 채 즐겁기만 하던 그때에 그 학생은 먼저 내게 다가와 자신의 아픔을 조심스레 얘기했다.
그 학생은 아버지에게 가장으로서의 구실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술을 마시면 엄마에게 욕설과 폭행을 하는 등 자기에게 까지도 난폭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도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
그 학생은 방학 때는 아버지가 있는 집을 피해 교회에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또 학교를 도피처로 선택하였기에 자율 아닌 자율학습을 진정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쉽게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학생은 너무 일찍 알아버린 듯해 안타까웠다. 그때 나는 어리석게도 그 학생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풀어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학생이 보호받아야 할 한 마리 새가 아니라 내 앞에 우뚝 서있는 큰 산이었다.
수업시간에는 그 누구보다 환한 얼굴로 열정을 보였고, 때로는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또 국화 한 다발을 내게 안겨주며 가을이 왔음을 누구보다 먼저 일깨워줬고, 내가 학교의 온갖 잡무와 학생들 문제로 힘들어 할 때도 나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해 주거나 시를 녹음한 테이프를 조심스레 건네주며 위로해줬다.
아이를 바라보며 난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일방적인 통행이 아닌 서로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것임을 알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관계가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인이 신성하기를 원하는 교단에서 교사라는 어쭙잖은 권위로 가르치는 행위만을 강조하기보다는, 함께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그런 관계가 진정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여전히 교직은 보람을 낳는 천직
지난달 스승의 날에 동료교사들이 말하기를 이제는 스승의 날이 없어져야 한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학생들이 교사 알기를 과연 스승으로 인식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싶은 게 사실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는 글이 올라온다는 글을 언론에서 보았다. 현직 교사가 올린 글도 있다고 한다. 스승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기념일을 원치 않으니 없애 달라는 내용이다.
학생인권조례 시행이후 교권 추락으로 인해 스승의 날 교사들이 축하받는 분위기는 사라져가고 있으며, 김영란법 시행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카네이션조차 선물해서는 안 된다고 하니 누가 꽃을 가져올까봐 더욱 두려운 날이 됐다는 것이다.
올해 스승의 날에는 학생들에게 롤링 페이퍼를 선물로 받았다. 응원의 말과 사랑의 말들이 가득한 가운데 가장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구절을 소개한다.
“제가 본 국어쌤 중에 제일 지적이고 훌륭하세요! 수업 중에 경험담이나 명언은 너무 좋고 기억에 오래 남을 거예요. ”
멀리 창밖으로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는 듯 녹음이 우거져 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내 곁에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 역시 각자 가슴에 안고 있는 상처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서는 커다란 산이 될 것을 믿기에, 내 또 다른 스승 될 것을 확신하기에 지금 이 순간 너무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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