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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노성진 자유기고자
눈모자와 홍시 그리고 까치밥
“빈가지에 달린/누구의 빨간 심장 하나”(김승기‘까치밥’1연)
<대지>의 작가 펄벅이 1960년대 한국에 왔을 때의 일화라 합니다.
‘한국의 정수를 맛보기 위해 천년고도 경주를 가보고 싶다’는 작가를 태운 기차가 감나무가 많은 어느 시골 마을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저 나무 끝에 달린 빨간 열매가 뭐죠?”
“한국에서는 겨울을 나야 하는 텃새를 위해 감을 남겨두는 ‘까치밥’이라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 펄벅은 “굳이 경주까지 갈 필요가 없겠네요, 까치밥을 본 것만으로도 내가 한국에 온 목적이 모두 이루어졌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난밤(2017.12.04.)에 내린 함박눈으로 울안 홍시들이 흰모자를 썼습니다. 25여년전 살림집을 지으며 심은 감나무입니다.
처음에는 주택 내 녹지 조성 의무화로 감나무 몇 그루 더 있었지만 퇴직이후 울안 텃밭을 가꾸기 위해 감나무 한 구루만 남기고 모두 베어 냈습니다.
감나무를 심은지 몇 해 정도는 그리 많지 않지만 가을 이면 홍시를 따 먹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감나무는 각종 병충해에 시달리는지 처음에는 그렇게도 많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나 한여름이 지나면 감은 별로 없고 가을까지 홍시로 남아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았습니다.
퇴직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봄 부터는 달리 마음을 먹고 감나무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3월부터 농약사가 권하는 약품으로 감나무에 시비를 했습니다.
농약사가 추천한 감나무영양제와 지금은 기억에 없는 농약을 희석한 20리터 질통을 메고 대문 위를 오르내렸습니다.
연중 대 여섯 차례 농부 작업 모자에 눈 보호 안경, 마스크, 긴팔 위아래 옷으로 몸을 감싸고 남들이 보기에는 좀 우스운 복장이지만, 육체적인 건강도 생각하며 감나무 농약처리를 계속했습니다.
결실의 가을! 감나무를 심어 가장 많은 2접이 넘는 감이 열렸습니다.
지나온 1년을 되돌아 보며 난 준비성(readiness)이란 단어를 기억해 냈습니다. 교육학에 나오는 어휘입니다.
지나온 시절, 교사는 항상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떠올랐습니다.
살아오면서 준비 없이 한번에 이루어지는 건 절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은 늘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준비는 삶에 꼭 필요한 요소겠지요.
2018년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수험생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며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습을 붉은 홍시 속에서 찾고 싶습니다.
우리는 조금 부족하고 엉뚱한 행동의 사람들을 “너 마치 철부지 같구나?”하고 말 합니다.
철은 계절이고 계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삶을 준비하라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성화입니다. 왜 감을 따지 않으냐고, 하지만 나는 지금 남아 있는 홍시를 많이 따고 싶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느끼는 홍시 맛보다는, 내 집 앞을 지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눈으로 맛보는 홍시를 즐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누굴 위해 저렇게/ 제 심장을 내걸 날/있을테지”(김승기‘까치밥’4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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