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6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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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관리자
제 목   최연성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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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최연성(군산대 교수/군산발전포럼 의장)



 

김광균, 경성고무공장의 모더니스트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냐”로 시작되는 김광균 시인의 와사등(瓦斯燈)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린 국민애송시이다. 대학입시에도 단골로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로 끝나는 외인촌(外人村),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고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 읊은 설야(雪夜) 등도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다. 그의 시는 언어가 아니라 그림이다. 마치 멋진 풍경화나 빛바랜 사진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그의 시에는 유난히 바다, 항구, 배, 파도가 많이 등장한다. 첫 시집인 ‘와사등’은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만한 명작인데, 바다, 해변, 갈매기, 항구가 곳곳에 등장한다. 왜 김광균은 바다와 항구를 노래했을까?

김광균은 13살에 ‘가신 누님’이라는 시를 중외일보에, 다음 해에는 ‘옛 생각’이라는 시를 조선일보에 투고할 정도로 조숙한 천재였다. 개성 선죽교 근처가 집이었다.

포목상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무난하게 유년기를 보냈지만 12살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세가 기울었다. 그러나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어머니는 그를 개성상업학교에 보냈다.

상업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32년(19세)에 바로 외척의 소개로 군산에 있는 경성고무공장에 취직하게 된다. 봉급 많이 주는 대기업에 취업한 것이다.

그리고 1938년 조선일보에 ‘설야’가 당선되고 용산 본사로 발령날 때까지 7년간을 군산에 산다.

김광균이 가장 왕성하게 詩作활동을 했던 시기가 바로 이 7년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 바다와 항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한낮이 겨운 하늘에서 성당의 낮종이 굴러나리자 / 붉은 노-트를 낀 소녀 서넛이 / 새파-란 꽃다발을 떨어뜨리며 / 햇볕이 퍼붓는 돈대 밑으로 사라지고 / 어디서 날아온 피아노의 졸린 여음이 / 고요한 물방울이 되어 푸른 하늘에 스러진다” 산상정(山上町)이라는 시의 일부인데, 성당, 노트, 피아노 등이 시어로 사용되었다.

1930년대 조선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매우 이국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김광균의 시는 대부분 지명이나 고유명사가 등장하지 않아 그 배경을 짐작하기 어려운데, 이 모던한 시는 ‘산상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산상정, 곧 야마우에쵸는 현재 해돋이공원이 있는 선양동 산말랭이의 일본식 지명이다.

시인은 거기서 월명동을 내려다보고 이 시를 썼다. 그 때 둔율동 성당에서는 은은히 종소리가 울렸으리라.

“세관지서의 깨끗이 씻은 정문 안엔 매화꽃 한 송이가 고요히 방울을 맺고 있고, 젊은 사무원 하나이 창밖에 고개를 내밀고 연방 하품을 해가면서 이 혼탁한 부두의 오후를 내다보고 있다.”

1934년에 쓴 ‘삼월과 항구’라는 수필의 일부인데, 당시 군산항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는 수작이다.

그는 소설도 한 편 썼는데, 구암동 앞 금강이 배경이다. 많은 작품이 군산의 근대풍경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전모는커녕 군산이 무대라는 것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김광균은 6.25를 계기로 사업에 투신하여 사업에 크게 성공했고 무역협회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사업에 몰두하다보니 자연히 시와는 거리가 멀어졌고, 우리가 좋아하는 그의 대표작들은 다 젊은 시절 쓴 것들이다.

특히 군산시절은 가장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이고, 서울로 전근했지만 해방 전까지 경성고무에 계속 근무했기 때문에 군산으로의 내왕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군산은 김광균을 너무 소홀히 대접했다. 1993년 80세를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군산으로 초청해서 회고담을 들은 적도 없다.

근대적이고, 근대의 풍경을 수채화처럼 묘사하고 있는 그의 시가 어디를 배경으로 했는지 관심이 없다.

와사등이 근대의 가로등이라는 것은 다 알아도 혹시 군산에 있던 것은 아닐까라고 누구도 연구하지 않았다.

출세작인 ‘설야’도 군산에 살며 쓴 시이다.

우리가 아무리 궁색해도 군산내항이나 경성고무공장 터 어디쯤에 그를 기리는 시비 하나쯤은 세울만하다.

월명동을 걷노라면 1930년대가 풍경화처럼 눈앞에 다가온다.

격자형으로 반듯하게 정비된 도로와 근대풍의 적산가옥들은 전주의 한옥마을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와 여행객들을 아스라한 과거로 안내한다.

어둑어둑해지면 가로등에 불이 들어올 테고, 야간열차는 기적을 울리며 경성을 향해 떠나고, 항구에서는 원양에서 돌아오는 기선들이 지금의 전자음과는 다른 묘한 음색의 뱃고동을 울렸을 테다.

이런 근대를 모더니즘이라는 문학사조로 그림 그리듯 시를 쓴 분이 김광균이다.

이제라도 그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그의 글을 분석하고, 그리하여 그를 기념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군산의 근대문학에 대한 아이콘은 모더니스트 김광균이 제격이다.

 

2017-10-31 17:57:22에 등록된 글입니다.[From : 125.139.14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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